해당 글은 글또 10기를 지원하면서 작성한 삶의 지도입니다.
딱히 하고싶은게 없어서 정보통신과를 왔어요
학창시절의 저는 딱히 하고싶은게 없고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앞에선 조용한 그런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이 성적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런저런 성적에 맞춰서 전문대 정보통신과에 진학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소프트웨어 / 전기공학 반반을 다루는 과였어요.
그러던 중 학교에서 어떤 기업과 연계하여 소프트웨어 부트캠프를 진행했는데 또 재밌어보이는건 무작정 도전해보는 성격이라 지원했고 합격 후 학교앞에서 자취하면서 낮에는 부트캠프, 밤에는 야간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했어요. 자바 스프링으로 웹서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자연스레 학교 성적도 좋아지더라구요. 그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잘한다는 말도 들으니 신이 났습니다.
과정이 끝난 후 같이 교육받았던 친구들은 관련업계로 취업하거나 다른 쪽으로 취업했는데 저는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 득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진로상담에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ㅇㅇ아, 하고싶은게 없어도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아도돼. 사람마다 다 때가있고, 쌤이 아시는 분도 뒤늦게 하고싶은게 생겨서 대학원가고 잘지내고있으니 너도 그 때 해도 늦지않아” 그때는 단순하게 당장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게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힘이되는 말이더라구요. 그래서 결심합니다. 대학을 다시 가기로.
편입생의 혼란스러운 졸업
하고싶은게 있으면 또 하는 성격이라 (그거만 하는게 문제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인서울 4년제 대학 컴퓨터공학과로 편입했습니다. 그때가 23살이었고 제가 다시 대학을 옴으로써 얻고자 했던 것은 크게 두가지였어요. 첫번 째, 전공지식. 두번 째,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 하지만, 편입을 하게되면 3학년 수업부터 듣게되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모든 과정을 건너띄고 전공수업부터 듣게되니 ‘어? 이거 뭔가 잘못됐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던 중 동아리를 들었습니다. 게임 동아리였는데 학교 수업을 떠나서 진짜 자기가 하고싶은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더라구요. 이미 실제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진짜 딥하고 로우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또 2차 좌절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까지 밤낮없이 개발할 정도로 개발을 좋아하는사람인가?’ 계속 나에게 묻고 결국 전 동아리를 나오게됐습니다.
뭔가 절차대로 (쉬움 → 중간 → 어려움) 공부할 수 없는 상황,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방황만하다가 겨우 졸업을 하긴 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졸업시켜주는줄 알았는데 그 때 인생에서 첫번 째로 쓴맛을 보았네요 😓)
스타트업 부터 시작해보자
한참 취업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쓰던 때가 개발자 붐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여러 대기업에도 지원을 했는데 면접 공부하면서 GSAT 나 NCS 를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구르면서 배워보자는 취지로 여러 스타트업들에도 지원을 했고 그 중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 go 라는 언어를 사용했는데 아직까지 관심이 있을 정도로 정말 매력적인 언어인 것 같아요.) 3개월 근무 후 아쉽게도 정규직 전환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취준생활을 하던 중, 첫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었던 사수분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신 후 저를 불러주셔서 두번 째 스타트업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약 2년반 정도 근무를 했는데 근무하면서 파이썬 장고, 노드 nestjs, 코프링 등 CTO 가 바뀔 때마다 언어와 프레임워크도 같이 바뀌었고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poc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했고 기획자와 함께 기획 리뷰 하면서 런칭도 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 다닐 때보다 많은 흥미를 느꼈고 역시 실무 개발이 재밌다라고 느꼈던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것을 논의할 사수가 없다보니 1년 정도 됐을 때 우매함의 봉우리 끝에 있었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회사가 사업을 조금 확장함에 따라 미들급 개발자들을 증원하면서 저는 절망의 계곡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 코틀린, 스프링 부트로 기술스택을 변경했는데 저에게 러닝커브도 너무 높았고 쏟아지는 지식의 바다에서 길을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고 좋은 동료들이 길잡이 역할을 잘 해줬던 것 같아요. 그 때 DDD 나 헥사고날 아키텍쳐, TDD 등 아키텍쳐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니어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구현역량임을 깨닫고 대용량 트래픽을 다루는 회사로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재는?
그렇게 이직한 현재 회사에서는 트래픽도 적지않고 카프카에 레디스, 웹소켓도 운영하고 있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도적으로 한 피쳐를 맡아서 배포하기도 하고 사용해보지 않은 라이브러리를 사용한다던지, 동시성 이슈나 이벤트 처리 등 대용량 트래픽환경의 대한 설계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환경에 이직하게 되었는데도 처음엔 낯선환경과 쏟아지는 업무사이에서 어떤일부터 시작하고 어떤 것부터 공부해야할지 몰라 또 이직을 고민했었습니다.
그 때 넥스트스텝이라는 교육사이트에서 커리어 NEXTSTEP 이라는 과정을 수강하면서 현재 업무를 잘 정리하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대로 이끌어가는 방법을 배우게되었습니다. 일을 하기전에 항상 문서로 전체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도메인의 개발자들과 이야기도 하게되면서 시야도 많이 트이고 인사이트도 얻게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이 익숙해진 지금도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점을 찾아내고 정리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어요.
마무리
이렇게 삶의 지도를 작성하다보니 2023년 하반기, 2024년 상반기는 깨달음이 많았네요. 확실히 절망의 계곡에서는 빠져나온것 같은데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굉장이 힘이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날 향로님의 블로그에서 재능있는척하지않기 라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특히 노력하지 않는 척 할 수록 나는 진짜 재능 없는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라는 대목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평소에 저는 정말 모르는 것 외에는 동료들에게 질문하지않았고 평일저녁과 주말에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tmi 라고 생각해서 알리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ㅎㅎ) 내가 공부하는 주제에 대해서 더 높은 기대치를 바라고 잘못된 답을 할까봐 그게 두려워서 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틀렸더라도 알게된것에 대해 공유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에 관심있는지를 주변에 잘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놓고있던 기술블로그 글들도 조금씩 발행하면서 회사 업무외에 나라는 사람이 가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또는 커리어 NEXTSTEP 에서 만나신 분이 알려주셨는데요. 저에게 꼭 10기를 지원해보라고 하셔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혼자서 글쓰기는 이제 조금 심심한 것 같아서요. 생각을 글로 계속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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